문화再발견 - 사적 제324호 '서울 구 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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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再발견 - 사적 제324호 '서울 구 서대문 형무소'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1.29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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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문화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화재를 국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생생한 문화재현장 스토리.
문화再발견 제104편 '서울 구 서대문 형무소', 문화재 재발견의 스케치

 

서울 구 서대문 형무소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근대적인 감옥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해있습니다. 1988년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약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560여 평의 목조건물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불렀습니다. 종로의 감옥에서 500여 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곳입니다. 
애국인사들이 늘어나자 1912년 일제는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또 지어 경성감옥이라 하고, 원래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이라 불렀습니다.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었습니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하였으며, 김구선생·강우규·유관순 열사 등이 이곳에 수감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이 곳에서 목숨을 다하였습니다.

 

1946년 광복 직후에는 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로 바뀌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변동으로 인해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독립의 역사를 지니며 그후로는 민주화와 정치적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존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교육장으로 
매우 뜻깊은 곳입니다.

 

서울 구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격동의 정치적 변화를 간직한 곳으로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사적입니다.
이에 CPN문화유산에서는 서울 구 서대문 형무소의 문화재 보존관리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CPN문화유산에서는 앞으로도 숨겨진 문화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화재를 국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생생한 문화재현장 스토리를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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