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인흥세거지’ 중요민속자료로 승격
상태바
‘남평문씨인흥세거지’ 중요민속자료로 승격
  • 관리자
  • 승인 2008.02.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 ‘남평문씨인흥세거지’ 전경







 







문익점의 후손들이 터를 잡아 살아온 대구 달성군 ‘남평문씨인흥세거지’가 중요민속자료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5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3호 ‘남평문씨인흥세거지(南平文氏仁興世居地)’를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로 승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평문씨인흥세거지’는 19세기 중반 문익점의 18대손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1812~1874)가 지금의 광거당(廣居堂)
자리에 용호재(龍湖齋)를 건립하면서 조성된 곳으로, 1910~1940년경에 용호재 주위에 남평문씨 일가의 살림집과 재실 등이
지어졌다. 현재 조선 후기 전통가옥 9채와 정자 2채, 문고1채가 남아 있으며, 도로와 인접한 부분에는 나지막하게 담이 쌓여있다.







 













▶ 수봉정사

 




▶ 광거당








 






마을 전면에 위치하고 있는 수봉정사(壽峰精舍)는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일족이 모임을 갖는
장소로 당시 생산된 춘양목을 잘 활용하여 민족의 정신을 간직하고자 건립된 ‘남평문씨인흥세거지’의 대표적 건물이다. 또한 광거당은
자제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학의 장소이며, 인수문고는 도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건물로 국내외의 희귀고서 2만 여권이
소장되어 있다.



이 세거지는 기존 전통마을의 풍수지리적 정서와 민속적인 풍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특히 배산향천(背山向川)의 조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평지에 위치하여 농경생활의 근대화가 용이하도록 하는 등 20세기 초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근대화를
지향했던 철학이 엿보이는 장소이다.



또한 정전법에 따라 구획을 정하여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한 뒤 집을 지어 오늘날의 도시계획과 같이 마을을 구성한 희소한 예로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주거유형들은 대부분 평면상 ㅡ자형이고, 그 배치는 튼 ㅁ자, 튼 ㄷ자, 튼 곱자와 二자형을 나타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마을의 조성시기와 그 규모 및 형태 면에서 기존의 민속마을과 차별화 된다”고 평가하며, “문중의 정신적 유산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정형성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주거공간의 근대적 변용현상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신앙․의례․생활도구 등 다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