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를 찾아서-적군과 맞선 군사들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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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찾아서-적군과 맞선 군사들의 함성
  • 심연홍 기자
  • 승인 2020.03.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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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호암산성

날씨가 참 좋다. 이른 오전이라 바람이 차갑긴 했지만 청명한 날씨가 마음까지 깨끗하게 해준다. 서울 호암산내의 호암산성 터를 찾아가는 길이다. 호암산 호압사 방향을 왼편으로 끼고 오르는 길은 제법 높은 깔딱 고개여서 쉬운 길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느끼는 산행의 재미가 더 컸다. 주변이 잣나무 숲이어서 공기가 맑았고 발길에 닿는 나뭇잎, 돌맹이들의 느낌도 좋았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지나고,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을 따라 조금 가다보니 얼마지 않아 산성터가 보였다. 산성터가 특별히 높거나 크지 않아서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호암산성터.(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호암산성터.(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호암산성 터는 국가사적 제343호로 축조시기를 통일신라시대(67세기경)로 추정하고 있다. 산성터의 평면 형태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쭉한 마름모꼴로 해발325m 능선을 따라 축조된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이란 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수평으로 둘러쌓은 산성을 뜻한다.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성된 호암산성의 둘레는 1,250m이며, 그 중 약 300m 구간에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문화재보호정책과 담당주무관인 김미성씨에 의하면 이전엔 이곳을 한우물 및 주변 산성지라고 했는데, 2011년도에 성곽에 중점을 두고 전체적으로 이름을 통일성 있게 정비하여 호암산성이라고 했다. 또 산성에 포함된 한우물, 석구상은 호암산성이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사적으로 등록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1989년과 1990년 두 번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고도 전했다.

 

호암산성터. 작은 능선저럼 보인다.(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호암산성터. 작은 능선저럼 보인다.(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산성유적은 크지 않은 봉우리를 최고봉으로 하고 있으며, 성 내부는 비교적 평탄한 면을 이루고 있다. 산성의 동북방향은 관악산과 삼성산의 험준한 봉우리들로 막혀 있으며, 서북·서남·서쪽은 안양천(安養川)을 끼고 발달한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날씨가 맑은 날 산성터 정상에서 서쪽을 내려다보면 멀리 인천일대의 해안선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한강을 건너 용산과 남산, 그리고 북한산까지 조망된다. 산성의 이 같은 입지조건으로 볼 때, 안양 및 금천 일대의 평야를 관할하는 요새지로서 서쪽 해안과 북쪽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에 대한 방어와 공격을 위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호암산정상에서 내려다본 전망. 서울 수도권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호암산정상에서 내려다본 전망. 서울 수도권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오늘도 맑은 날씨여서 서울과 경기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서쪽으로 인천방향과 북쪽으로는 남산타워까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조망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결의를 다졌을 수많은 군사들의 함성이 산성 가득히 들려오는 듯하다. 한편으로, 바람찬 산성에서 멀리 산하를 내려다보며 때로는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도 했을 그들을 떠올려봤다. 오늘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은 호암산성의 가치를 지역민들이 잊지 않기를 바란다.

 

*호암산성 석구상으로 이어집니다.

 

뉴스제작팀 심연홍기자

yhh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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