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스승, 진공대사 탑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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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스승, 진공대사 탑비를 만나다
  • 이경일
  • 승인 2020.06.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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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65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
보물 제365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 및 석관(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365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 및 석관(사진=국립중앙박물관)

 

진공대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과, 그 옆에 놓여있는 돌로 만든 함이다. 원래는 강원도 원주의 흥법사터에 있었으나, 1931년 일제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되고 있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고려초에 활약한 승려이다. 장순선사의 제자로 승려가 된 진공대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신라 신덕왕의 스승으로 왕사가 되었다. 고려 건국 이후에 진공대사의 설법에 감화한 태조가 그의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했지만,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므로 태조는 손수 비문을 지어 대사의 비를 세웠을 정도로 두터운 존경을 받았고 한다.

 

진공대사의 탑은 특이하게도 그 앞쪽에 석관이 따로 있어 세트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승탑이 탑 안에 사리공을 만들고 그 안에 안치되지만, 진공대사의 탑은 석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그곳에 사리가 모셔진 것이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형태로, 기단(基壇)의 아래와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다.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받침돌 표면에는 웅장한 구름과 함께 뒤엉켜 있는 용의 몸체가 생동감있게 조각되어져 있다.

탑 기단부 상.중 하대석 전체모습(사진=문화재청)
탑 기단부 상.중 하대석 전체모습(사진=문화재청)

 

탑신의 몸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꽃무늬가 장식되어 독특하고, 앞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이 각각 새겨져 있다. 그 위로 얹혀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과 2중으로 된 서까래가 표현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한 낙수면은 8각의 모서리선이 굵게 새겨져 그 끝에는 높이 솟아있는 꽃조각이 달려있다.

 

별도의 지대석 위에 놓인 석관은 진공대사의 유품을 경문(經文) 등과 함께 봉안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혹은 승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대사의 유골을 가매장했을 때 사용했던 석관으로 보기도 하며, 뚜껑까지 완전하게 남아있어 가치가 높다.

 

유물의 조성연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 태조 23(940)으로 추측된다. 세부적으로는 화려하며, 전체적으로는 고승의 입적에 걸맞은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일제의 수탈행위로 원래의 자리를 잃고 낯선 곳에 자리한 문화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진공대사 부도비 또한 일제의 잔재 속에 원 자리를 잃어버린 소중한 문화재이다. 고려불교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고려불교 중흥의 기반이 되었던 바로 그 곳. 진공대사 부도비 또한 흥법사터에 서있을 때 더욱 빛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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