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근대화의 공간 동촌을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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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근대화의 공간 동촌을 조명하다
  • 정은진
  • 승인 2020.07.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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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 동촌에서 근대화 기지로… ‘연지·효제, 새문화의 언덕’ 발간
‘연지·효제, 새문화의 언덕’ 보고서 표지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연지·효제, 새문화의 언덕’ 보고서 표지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이 2019년 연지·효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 연지·효제, 새문화의 언덕보고서를 발간했다.

 

연지동·효제동은 서울의 도심에 자리 잡고 있으나 다른 도심에 비해 시민들의 인지도가 낮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북촌처럼 한양의 주요 주거지였으며, 근대기에는 정동과 같이 선교기지가 조성된 근대화의 공간이었다.

 

현재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경복궁 북쪽과 서쪽을 북촌과 서촌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 일대는 창덕궁과 종묘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 동촌이라 불렸다. 동촌은 붕당 정치 동인의 발생지이다. 동인의 대표인 김효원이 동촌 연지동에 살았고, 김효원을 따르는 이들을 동인東人이라 불렀다.

 

효종과 인평대군이 거주했던 어의궁과 대궁이 있으며, 효종이 대군시절 볼모로 있었던 심양에서 알게 된 명나라 유민들이 함께 조선으로 건너와 살던 명인촌이 형성된 곳이다. 1653년 조선에 표류한 하멜도 서울의 명인촌에 거주하였음을 그의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 선교사 사택 (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10년대 선교사 사택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연지동·효제동은 근대기 개신교 북장로회의 선교기지가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연지동 전체의 60.5%18,972평과 효제동 1,430평에 형성된 대규모 선교기지가 있어 당시 선교사의 언덕이라 불렸다그 밖에도 천민들이 중심이었던 연동교회’, 3.1독립운동의 핵심이었던 정신여학교’, 신식 교육의 요람 경신학교등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북촌과 정동에 못지않은 근대화 기지였던 연지동·효제동을 보여주는 『연지·효제, 새문화의 언덕은 서울책방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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