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산성 변화과정을 밝히는 핵심유적, ‘거창 거열산성’ 사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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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산성 변화과정을 밝히는 핵심유적, ‘거창 거열산성’ 사적 된다!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7.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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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열산성 1차성 집수시설 전경 (사진 = 문화재청)
거열산성 1차성 집수시설 전경 (사진 = 문화재청)

 

거창 거열산성은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의 영토 확장 각축장으로 문헌기록에서 실체가 확인되는 거창지역 삼국 시대 산성 중 최대 규모다.

 

신라 시대에 축성된 1차성과 통일신라 시대에 증축된 2차성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태가 확인되어 신라산성의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핵심유적임이 확인됐다.

 

1차성의 둘레 길이는 원래 약 418m, 1차성에 덧붙여 축조된 2차성의 둘레는897m이며, 2차성과 연결되지 않는 1차성 안쪽을 헐어낸 구간과 1·2차성 중복구간 등을 제외한 현재 전체 산성 길이는 약 1,115m이다

 

거열산성 2차성 성벽 전경 (사진 = 문화재청)
거열산성 2차성 성벽 전경 (사진 = 문화재청)

 

지금까지 학술조사(지표조사 1, 시굴2, 발굴2)2차례의 학술대회를 통해 1차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거창지역에 축조한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백제 멸망 후 3년간 백제부흥운동이 전개되다 문무왕 3년인 663년에 신라 장군 흠순과 천존에 의해 함락되어 백제부흥운동군 700명이 전사한 거열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1차성에 증축된 2차성은 673(신라 문무왕 13) 나당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신라가 거점지역인 거열주에 축조한 만흥사산성으로 파악되며, 대동지지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쪽 계곡에 조성된 1차성의 집수시설(성내에 물을 모으는 시설)과 동쪽 계곡의 2차성 집수시설은 축조방법과 구조 등에서 차이를 보이며, 축성기법의 변화와 함께 고대토목공법 복원과 수리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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