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 호압사(虎壓寺)’, 조선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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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호압사(虎壓寺)’, 조선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 승인 2023.04.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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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가 창건된 연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조의 기록에는 지금의 시흥군 현감을 지냈다고 하는 윤자(尹滋)의 이야기로부터 살펴볼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금천의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것과 같고, 그런 중에 험하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범바위(虎巖)라 부른다. 술사가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 하였다.’라 전하고 있다.

 

또한 조선 궁궐을 축조할 당시 호랑이 산자락 관악산의 정령(정기)이 사나워서 화를 부르니, 이를 누르고자 호압사를 창건하여 다스렸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 궁궐의 역사와 그 한 축을 같이하고 있는 금천구의 호압사. 이는 완벽한 궁궐의 조성 역사,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도전에 의해 유교 이념을 따랐던 조선의 건국이, 이처럼 불교의 도움을 받아 창건되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상당한 이율배반적이다. 하지만 이런 기록은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처음 쓴 책이 석가의 족보를 기록한 석보상절(釋譜詳節)’이라는 것을 볼 때 조선 초기는 불교와 유교가 혼재된 사회였다.

 

호압사는 그걸 상징하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조선 초기 사회를 이해하는 두드러진 상징성으로, 우리가 당시대를 이해하려면 탑골(탑이 많은 지역)’ 이라는 지명과 함께 더불어 창건된 호압사를 눈여겨봐야 한다.

 

호압사는 대웅전 앞 탑이 있어야 할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었다, 탑을 대신한 느티나무는 그 수령이 600년을 넘겼다. 문화재청 전 천연기념물과 분과위원장 수목 부문 김학범 교수의 판단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나무가 보호수에 머물고 있는지 문화재청과 금천구는 답해야 할 것이다.

 

단 한 번의 조사도 이루지지 않고 방치한 것은 아닌지, 그것은 곧 조선의 궁궐 역사, 또한 지역주민들을 무시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그 가치를 재조명하고 사격을 재조정해야 한다. 또한 시흥동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호압사의 역사적 평가, 조선 건국의 대표성을 상징하는 불교적 색채, 이를 연구하지 않고는 조선 초기 시대를 제대로 알 수 없다. 호압사의 주지 현민스님(조계종 호법부장 봉직 중)은 이 같은 점을 애석해하면서 본보(씨피엔 문화유산 tv)와 호압사의 역사적 지리, 인문학적 가치를 조명하고 밝혀나가기로 의견을 밝혔다.

 

그 첫 과제로 약사전의 조선 초기 3불 불상의 보물 승격과 탑을 대신해서 호압사를 지켜온 보호수 느티나무의 천연기념물 승격 등 호압사의 역사적 가치를 새로 쓰기 위한 노력을 지역 주민과 함께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불교는 1,500년 우리 민중과 함께해온 우리 전통의 종교다. 삶을 쓰는 지혜로 우리들 면면에 불교의 이념이 흐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현민스님은 애타게 바라고 있다. 그것이 곧 금천구가 미래지향적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 CPN 문화유산 TV 국장 이희섭(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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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동 2023-05-05 02:50:43
삼성산 자락 호압사 느티나무를 천연 기념물로 지정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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