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흥궁이 노숙자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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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궁이 노숙자 숙소(?)
  • 관리자
  • 승인 2004.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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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의 제일 큰 섬. 선사시대부터 구한말까지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강화도.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철종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까지 서민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용흥궁은 지방유형문화재 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철종은 1850년 왕으로 즉위하면서, 빈민구제책 실시, 삼정이정청의 설치 등 백성을 위한 정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세도정치와 자신의 지병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왕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잠저로는 태조의 함흥 본궁과 개성 경덕궁,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영조의 창의궁 등이 있다. 대개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는다.

용흥궁도 원래는 초가였으나, 1853년에 강화 유수 정기세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1903년에 청안군 이재순이 중건하였다.

기자가 시민의 제보로 찾아간 용흥궁은 조선후기의 혼란했던 생활이 재현된 듯, 용흥궁의 관리는 엉망이었다.

앞마당에는 풀들이 자라 있으며, 문과 문풍지는 모두 뜯어져 있는 상태였고, 고리가 떨어진 문은 기울어져 있었다.

갈라진 바닥에는 먼지와 흙이 가득했으며, 문화재를 보호하자는 글자판까지도 먼지가 앉아있었다.

심지어 노숙자의 잠자리까지 있었다.

각종 책들과 옷가지, 세면도구까지 갖추어져 있으며, 초를 켜 놓았던 흔적들로 보아 오래 전부터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다락 앞에는 술을 먹고 남은 쓰레기까지 놓여져 있다.

올해 초부터 관리인 노인이 월 10만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고 일을 관둔 후 강화군청에서는 상주하는 관리인을 찾는 중이었기 때문에, 관리에 허점이 노출되었다.

강화군청의 문화재 담당자는 아침 저녘으로 열고닫는 사람만 있을 뿐,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철종의 어린 시절 개혁정신이 싹텄던 용흥궁의 모습이 하루빨리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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