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충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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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충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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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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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충청북도 도청 회의실에서 6.25 한국전쟁 전후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희생자 합동추모식 및 간담회가 개최됐다.

이날 추모식 행사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헌화와 추모제문 낭독이 있었으며 청주시립예술단의 전통악기 공연도 이어졌다.

정진동 충북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위원회 공동대표는 추모사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해 정당한 이유없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이 있는데 알고도 말하지 못한채 50여년을 살아왔다”며 “불법적인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혀 희생당한 영혼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만순 충북대책위 운영위원장은 “충북지역은 영동 노근리와 단양 곡계굴 사건, 보도연맹원 학살 등 반인륜적인 학살을 당한 지역”이라며 “17대 국회에 제출된 통합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되도록 각 지역 시민단체와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추모식 후 간담회에서는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피해실태와 진상규명법 입법 전망과 과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간담회에서도 17대 국회에서 102명의 의원이 발의한 통합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했다.

이어 추모식 참가자 일동은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희생된 故 김선일씨의 죽음을 애도하고 민간인의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이라크로 파병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행사장에는 유족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의 참석이 적어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보이는 인상을 남겼다.

▲충북지역에서의 학살 사건

예비검속, 보도연맹원 학살

1950년 7월 9일, 11일 국군이 청원군 북위면 옥녀봉에서 괴산군 사리면, 칠성면, 불정면 등지에서 끌고 온 보도연맹원 총 8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이 가장 크게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청원군에서는 1950년 7월경 경찰이 청원군 남일면 두산리 분터골에서 청주지역 보도연맹원 약 100여명을 학살, 1950년 7월 8일 북위면 북이지서, 7월 11일 남일면 쌍수리, 신기리 등에서 경찰이 보도연맹원 학살, 1950년 7월초 경찰이 청원군 미원면 미원리 담배창고에서 좌익 가족 예비검속, 1950년 7~8월 오창면 창고에서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등이 있다.

또 보은군에서는 1950년 7월 5일 청원군과 청주시 등지에서 예비검속 된 보도연맹원 200~300명을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로 끌고가 학살한 사건이 있으며 옥천 지역에는 보도연맹원 학살 외에도 인민군이 청산면에서 1950년 10월 5일경 미군폭격으로 수십 명이 학살당한 사건도 있다.

영동군에서도 1950년 7월 21일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석쟁이재) 야산과 영동읍 부용리 어서실에서 학살이 있었다.


충북 단양 곡계굴 사건

1951년 1월 20일 오전 10시경, 1.4 후퇴 직후 약 400여명의 마을 주민과 피난민이 모여 있던 충북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괴개굴) 상공에 나타난 미군 비행기 4대가 민간인에 대해 무차별 폭격한 사건.

미군 비행기는 굴 입구에 기름통을 던지고 폭격 및 기총소사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에 타죽거나 질식사했고 총격에 사망한 이들도 있다.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

노근리 학살은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진행돼 노인과 어린이를 비롯해서 400여명이 학살됐다.

노근리 사건은 1999년 9월 미국의 2건의 비밀 문서와 당시 학살에 참가했던 군인의 증언을 토대로 AP통신에 의해 공개된 후 전세계에 알려졌다.

지난 1950년 미군은 당시 피난을 가던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시켜주겠다며 끌고 가다가 무전기로 군용기를 호출해서 무참히 폭격을 가해 죽이고 주민들을 굴다리 안에 몰아넣고는 기관총 사격을 가해 학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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