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답사 일번지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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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답사 일번지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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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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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10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초당(사적 107호)
만덕산 산기슭을 올라가는 내내 불어오는 솔솔한 솔바람 소리와 수 백 년 묵은 동백림과 야생차
밭에서 바람에 부딪혀 흘러오는 향기 그리고 아래로 내다보이는 강진만에 비친 햇살물결은 과연 남도 답사 코스 일번지로 꼽힐
자연과 문화유산이 주는 정겨운 우리 내 풍경이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 위치한 다산초당(茶山草堂)은 다산 정약용이 18년 유배생활 가운데 10년을 보낸 곳으로서, 남도
답사코스에서 어느 곳을 경유하든 빠지지 않는 문화유산이다.


이곳은 그의 소소한 여유를 관망할 수 있는 곳부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초당까지 곳곳에서 유배지에서 호연지기를 느꼈을 그의
자취를 바라 볼 수 있다.



다산초당은 원래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에 살던 해남 윤씨 집안의 귤림처사(橘林處士) 윤단이 산속에 지은 정자였다. 다산 선생은 해남 윤씨집안과
먼 친척뻘이었던 인연으로 윤단은 다산 선생을 이곳 초당으로 모시고 후학을 기르는데 힘쓰도록 지원했다.


다산 선생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학문을 발전시키고 저술활동에 전념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치민(治民)의 도리를 기록한
‘목민심서’, 정치·사회·경제제도를 포함한 개혁이론을 기록한 ‘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책을 집필해 우리나라의 실학을 집대성했다.



10년간의 업적이 묻어있는 다산초당은 남향구조임에도 서늘한 기운이 맴돈다. 송림이 우거져 한낮에도 햇빛이 들어올 여유가 없는 이곳은
그 구조로 인해 황량함마저 베어들기도 한다.


다산 선생은 제자들의 거처와 자신의 학문을 정진하고 저술활동을 하기 위해 서암(西庵)과 동암(東庵)을 지었다. 노후로 허물어진 것을 1976년 강진군에서
재건립 했지만, 관리·보존상의 문제로 초가지붕이 있던 초당을 기와지붕을 얹어 적잖은 실망감을 남긴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 선생이 유배생활 청산을 앞두고 발자취를 남기는 뜻에서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아나는 찻물로 쓰였던 약수인 약천, 초당 앞마당에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의 다산사경과 함께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는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동암을 지나 산길 따라 오르다 마주치는 천일각은 다산 선생이 유배당시에는 없던 것으로 강진군에서 1975년 건립한 것이다.
이곳에서 다산 선생이 흑산도에 유배된 둘째형 정약전과 가족이 그리울 때 강진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