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독립운동가 오의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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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오의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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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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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04년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예산결산위원장으로 선임되어 국내외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중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신 오의선(吳義善)선생을 선정·발표했다.



선생은 1889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2월 일본 명치대학에 재학 중 동경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선포한 2·8독립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후 임정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상해로 갔다.






선생은 동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의정원 경기도 대표 신석우(申錫雨) 등
4명과 같이 초대 의원으로 선출된 이후, 임시정부에서 세칙제정위원, 청원법률심사위원,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약하면서
초기 임시의정원의 골격을 세우고 임시정부를 민족의 대표기관이자 독립운동 지도기관으로 만드는데 힘썼다.
특히 1919년 5월 2일 제4회 회의에서는 임시의정원 의장이 재정문제 타결을 위한 의견을 타진할 때
그는 대표의원 홍 진(洪鎭;震) 김동형(金東瀅) 박용각(朴容珏) 장도정(張道政) 이원익(李元益) 손두환(孫斗煥) 조 정(趙檉) 등과
같이 내외 공채(公債)의 발부, 의연금 수합, 세금의 징수 등을 그 주요 재원으로 확보하여 운영케 하되, 불복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강제규정을 두자고 강경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이후 1921년 북경으로 옮겨가 무장투쟁론자인 박용만(朴容萬) 계열의 인물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서북간도 및 노령지역의 무장독립운동세력의
통일에 노력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다.


이에 따라 경북 안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최윤동(崔胤東)이 일본 경찰 갑비(甲斐)를 총살한 의거활동의 관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국내로 잠입한 뒤 시대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민족혁명 이념으로 전파된 사회주의에 공감하여 사회주의운동가로 변신했으며, 투옥된
동지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국제혁명자후원회에 가입·활동했다.


선생은 1931년 3월 향리인 용인에서 일경에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심한 고문으로 같은 해 5월 6일 옥중에서
42살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2월의
문화인물에는 시인 박두진이 선정



혜산 박두진은 1937년대 말 '문장'지에 시 '묘지송'과 '향현'을 발표한 이래 1998년
타계할 때까지 60년 가까이 시작 활동을 한 현대시문학의 거장이다. 첫 시집 '해' 비롯하여, '오도' '박두진 시선'
'거미와 성좌' 등을 거쳐 '사도행전' '수석열전' 등은 물론, 유고시집 '당신의 사랑 앞에서' 등 시집도 20여 권에
이른다.


그의 시를 주목하는 것은 그가 청록파 시인이었다는 시문학사적 사실 뿐만이 아니라, '현실의 거부와 초월'이라는 문제를
그가 자연과 신앙 속에서 모색했다는 점에 있다.


일제, 8.15 해방, 6.25, 3.15, 4.19, 5.16, 10.26 등 역사 민족적인 격변을 겪으면서도, 박두진은
그때그때 대응하는 지성과 양심을 통한 자유와 평등, 사랑과 진리에 대한 시적 탐구와 인식을 도모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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