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2 일지암을 둘러싼 '용운스님'의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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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2 일지암을 둘러싼 '용운스님'의 의혹!
  • 관리자
  • 승인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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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 스님은 현재 무안군에 추진하고 있는 초의선사의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생가 터는 전남 무안군 삼양면 왕산리 일대이다. 사업지대는 1만 5천여평에 이른다. 추모각, 추모비, 기념전시관
등 생전 풀옷(草衣)만 걸치고 살다간 초의선사의 검소한 성품에는 대조적인 방대한 규모이다.

더욱이 향후에도 초의 교육관 설립 등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모든 사업이 용운스님에 의해 이루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세평이면 족하다는 여연스님을 비롯한 다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다성(茶聖)으로 알려진
초의선사를 방만한 관광사업으로 진행한 무안군청, 지자체의 고육책이다.


이런 고육책에 용운스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무안군이 초의선사의 탄생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막대한 국가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타당성 짚어보아야 한다.

사실 초의선사는 태어난 곳인 무안군보다는, 평생 수행을 하고 수행의 방편으로 차를 마시며 동다송을 지었던 해남군에서부터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일지암 전경
용운스님은 해남 일지암의 암주로 11년 동안 재직하였다. 일지암
암주로 있으면서 나름대로 초의선사에 대한 연구와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사람들에게 마치 그가 초의선사의 계보를 잇는
사람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었다.

더불어 일지암이 차의 성지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유명 다인들이 방문했고, 이들과 교류하면서 용운스님은 ‘차’에 대한 일약
식견자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전두환 정권 시절과 맞물려, 정권유지 차원의 허문도 장관에 의해 추진된 국풍 운동으로 문화인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이 용운스님을 초의선사 사업의 길잡이로 내세운 배경이라고 무안군청의
박성열 문화관광과 계장은 말했다.

차문화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용운스님이 일지암에서 나오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임기 만료였다. 하지만 당시 대흥사(대둔사)
총무스님이었던 ‘원학’ 스님의 증언에 의하면 ‘다인’들로부터 차 행사를 빙자한 갖가지 의혹과, 또한 대흥사 일주문 간판을 바꾸어다는
과정에서 ‘전라도 사찰에 경상도 전각인의 글씨가 걸렸다는 것은 안 된다.’라면서 당시 전라도 출신의 유명 전각인으로부터 수회에 걸친
서체를 받아낸 의혹 때문이다.

일지암에서
나온 용운스님은 인사동에 초의문화재단을 만들고 초의선식, 초의 차 등 초의선사를 본격적으로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초의선사를 장삿속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일자 다시 지방 사찰로 내려갔다.



그러던 1997년 5월, 무안 군청에서는 초의선사의 탄생지 사업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마침 초의선사의 논문 발표등 일지암 암주 경력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용운스님을 섭외하여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비단 논문이나 초의선사 연구 때문만이 아니라 초의선사가 40여년간 기거하고 한국 다도의 중흥지인 ‘일지암’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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