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 스님은 현재 무안군에 추진하고 있는 초의선사의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생가 터는 전남 무안군 삼양면 왕산리 일대이다. 사업지대는 1만 5천여평에 이른다. 추모각, 추모비, 기념전시관 등 생전 풀옷(草衣)만 걸치고 살다간 초의선사의 검소한 성품에는 대조적인 방대한 규모이다. 더욱이 향후에도 초의 교육관 설립 등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모든 사업이 용운스님에 의해 이루지고 있다고 단 세평이면 족하다는 여연스님을 비롯한 다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다성(茶聖)으로 알려진 이런 고육책에 용운스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무안군이 초의선사의 탄생지라는 사실 사실 초의선사는 태어난 곳인 무안군보다는, 평생 수행을 하고 수행의 방편으로 차를 마시며 동다송을 지었던 해남군에서부터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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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두환 정권 시절과 맞물려, 정권유지 차원의 허문도 장관에 의해 추진된 국풍 운동으로 문화인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이 용운스님을 초의선사 사업의 길잡이로 내세운 배경이라고 무안군청의 차문화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용운스님이 일지암에서 나오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임기 만료였다. 하지만 당시 대흥사(대둔사) 일지암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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