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에 맞지 않는 김종필의 "자운서원"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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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에 맞지 않는 김종필의 "자운서원"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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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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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서원(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7년(1615)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이는 김장생 등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파주 호명산(虎鳴山) 아래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면서 시작되었다.

후에 자운산 아래로 터를 옮겼고, 효종(孝宗) 원년(1650)에 '자운(紫雲)'이라는 사액(賜額-임금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받았다. 그 뒤 숙종(肅宗) 39년(1713)에 그의 후학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 1632~1695) 두 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인 고종(高宗)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은 율곡을 모신 황해도 백천(白川)의 문회서원(文會書院)을 지정하고 파주의 자운서원은 훼철했다. 훼철된 서원터에는 묘정비(廟庭碑)만 남아 있다가 지방 유림들에 의해 향사만 지내왔다.

1973년 경내 주변을 정화한 후 자운서원은 그 해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팔작지붕으로 된 사당(祠堂)과 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담장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자운서원은 1997년 사당 전면에 강당과 동재, 서재, 협문, 외삼문을 신축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사당 내부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모셨으며 매년 음력 8월 중정에 제향을 올리고 있는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높은 대지위에 세워졌다.

한편 자운서원은 한국전쟁때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70년(경술庚戌) 유림의 기금과 국가지원을 받아 사당을 복원하였다. 당시 사당을 중건하면서 김종필은 편액(扁額)을 ‘자운서원’이라고 썼다.

그러나 서원의 사당 건물에는 당호(堂號- 본채와 별채에 따로 붙인 이름)를 거는 것이 원칙이며 「**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지 않는다. 후대에 훼철된 서원을 중건하면서 우선 사당을 중건하는데 이때는 어쩔 수 없어 「**서원」이라는 편액을 거는 경우도 있으나, 다시 강학(교육) 하는 건물을 지었을 때는 사당에 걸려있는 편액은 옮기거나 따로 보관하는 것이 기본이다.

제향을 올리던 유림들은 1990년 초 김종필이 쓴 편액을 확인하고 철거를 요청했으나 아직 철거되지 않고 있다. 대신 김종필의 이름은 먹으로 희미하게 지워져 있고 김종필의 호인 운정(雲庭)이라는 낙관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김종필의 자운서원 편액은 철거되거나 따로 보관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운서원은 우리나라 서원건축의 형식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이를 그대로 두는 것은 율곡 선생을 모욕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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