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N뉴스 - 다산 정약용도 극찬한 ‘강진 백운동 원림’ 명승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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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N뉴스 - 다산 정약용도 극찬한 ‘강진 백운동 원림’ 명승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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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0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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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운동 원림 근경>▲(사진=문화재청)


조선 최고의 별서 원림 중 하나
이시헌의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 등 후대 작품에도 등장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7일, 「강진 백운동 원림(康津 白雲洞 園林)」의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를 확인하여,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 옥판봉의 남쪽 경사지 아래쪽에 위치하며, 백운동 원림의 본가인 백연당(白蓮堂, 강진군 성전면)에서 북쪽으로 11㎞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내정(內庭,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의 유구가 남아 있고, 화계(花階, 꽃계단)에는 소나무, 대나무, 연, 매화, 국화, 난초가 자라는 등 조선 최고의 별서(別墅) 원림 중 하나다.

<강진 백운동 원림 원경>▲(사진=문화재청)

조영한 사람은 조선 시대 이담로(李聃老, 1627~1701)로 호는 백운동은(白雲洞隱)이다. 그는 손자 이언길에게 유언으로 ‘평천장(平泉莊)’의 경계를 남겨 원림이 보존되게 하였다. 이후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증손자 이의권(1704~1759)이 가족과 함께 살며 주거형 별서로 변모하였고, 이덕휘(1759~1828)와 이시헌(1803~1860) 등 여러 후손들의 손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강진 백운동 원림 정원>▲(사진=문화재청)

「강진 백운동 원림」은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백운동에 묵으며 그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곳의 아름다운 경승을 칭송하는 시를 남겼다.

다산의 제자이기도 한 이시헌은 선대의 문집, 행록(行錄, 언행을 기록한 글)과 필묵을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으로 묶었으며, 조선후기 문인 김창흡, 김창집, 신명규, 임영 등이 남긴 다양한 백운동 시문들과 함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강진 백운동 원림」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하여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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