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가 유적지였나요? 안내판은 있는데 아무것도 없이 유적지라고 하니 좀 황당하네요.” 미사리의 한강변에 산책을 즐기러 온 시민들은 대부분 유적지로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꽤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지만 안내판에 적힌 설명을 보지 않고서는 밭작물 경작지인지, 공사장인지, 산책로인지 알아보기 지난 90년대 재발굴이 된 이후 유적지 조성 계획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었으나 여전히 유적지 보전은 답보 상태다. 선사부터 조선까지 담고 있는 ‘역사의 보고’ 미사리는 70년대 까지만 해도 섬으로 남아있어 ‘미사섬’으로 불렸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에 대비해 샛강을 막아 조정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섬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샛강이 막히면서 한강 물 흐름이 빨라지고 홍수에 의한 침식도 심화됐다. 이에 잠실 수중보가 생기고 1986년부터 1989년 사이에 한강종합개발 사업의 일환인 호안 축조공사가 진행되면서 과거의 모습과는 미사리 유적에 대한 보존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년대 후반 홍수와 골재채취 때문에 한강변의 유적 퇴적층이 깎여 유적 파괴를 막기 위해 한강변 일부만 사적 제269호로 지정했으나 별다른 조치없이 묻어버렸다. 미사리 유적지는 지난 70년대 까지 한강유역은 물론 중부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알려져 왔었다. 4개 대학 연합이 참여한 80년대 발굴 당시에는 신석기 뿐 아니라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까지 층위를 이루는 것으로 밝혀져 90년대 초 8개 조사기관의 참가로 이뤄진 대규모 발굴에서는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문화변천 과정을 이후 미사리에 대한 점진적인 보호구역 조성도 논의됐었으나 현재까지 20여 년간 표류 중에 있다. 보호구역 인근에 대규모 비닐하우스와 가건물이 들어서면서 유적 파괴가 심화되자 지난 2001년 세종대에서 다시 집중 조사를 4~6 세기 한성 백제 시대의 농경지를 보여주는 밭이랑과 철제 경작도구도 발굴돼 사라진 한성 백제의 역사도 담고 있는 곳으로 유적지 안내문만 ‘덩그러니’ 최근 찾아간 미사리 유적지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밭 한가운데 유적지 표지만 발굴했던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 경작 등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다는 경고문에도 아랑곳없이 작물이 유적 보호를 위한 철조망 내에는 부서진 가건물 더미가 쌓여있다. 보호구역에서 허가없이 지어진 가건물을 시에서 강제로 철거하면서 문화재보호구역 주변에는 축사로 허가받아 공장으로 용도 변경된 불법 가건물들이 즐비하다. 보호구역 인근의 한강변을 따라가니 예전 버섯 농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은 주택으로 바뀌어 빈민촌을 연상케 했다. 건물을 마음대로 지을 수 없어 비닐하우스가 살림집인 경우도 많다. 미사리 유적지 일대는 대부분 노인관련 재단의 소유로 돼 있고 일부는 사유지다. 그린벨트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신축 허가도 나지 않고 토지 소유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골칫거리 지역으로 변했다. 하남시 관계자는 “재단 소유의 땅이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관계도 복잡해 집을 팔고 나가도 보상이 확실하지 않아 그대로 저작권자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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