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고 승전지 ‘인제 한계산성’ 국가 사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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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고 승전지 ‘인제 한계산성’ 국가 사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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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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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성 석축 잔존 구간(좌)><하성 석축 잔존 구간(우)>▲(사진=문화재청)


13세기경 축조, 7km에 달하는 둘레, 매우 험준한 지역에 지어져
고려~조선시대 다양한 유물 나와, 원부터 왜까지 강원도를 지키다


문화재청은 여몽전쟁 최후 승전지인 「인제 한계산성(寒溪山城)」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23일 지정 예고했다.

「인제 한계산성」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설악산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유적이다. 한계산을 중심으로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자연적인 암벽 지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성벽을 구축했다.

13세기 경 축조된 한계산성은 시대 변화에 따른 성곽 확장과 성벽이 연장된 구조가 잘 나타난다. 성벽과 별도로 축조된 망을 보는(돈후) 시설물을 갖추고 있어, 몽골 침략에 맞서 사용한 입보산성(들어가 지키는 산성)임이 드러났다. 평면 구조와 축성방식, 부속 시설물의 변화 양상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중세시기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7㎞에 달하며 상성(약 1.7~1.9㎞)과 하성(약 5~6㎞)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성은 몽골 침입에 대비해 사용하던 곳으로 매우 험준한 곳에 축조됐다. 하성은 후대에 반(反)원정책 추진을 하면서 대대적으로 개축해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성 남문지 정면(좌)><상성 출토 청자(우)>▲(사진=문화재청)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한 상성과 하성 시굴조사 결과, 고려~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구와 유물을 확인하였다. 상성에서는 총 15개소의 구들 건물지,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성벽 기저부(基底部)를 확인하였고, 청자와 도기 조각 등이 나왔다.

하성에서는 총 18개소의 건물지와 ‘至正十八年(지정십팔년)’명(1358년, 공민왕 7년) 기와 조각, 백자 조각 등이 나와 한계산성이 13세기 축조된 이래 고려 말에 다시 대대적으로 보수·증개축 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상성과 하성에서 나온 건물지 유구와 유물들은 시대별 다른 양상으로 한계산성 활용 시기 등에 대한 객관적인 고고학적 자료로 판단된다.

「인제 한계산성」은 고려 시대 몽골과의 항전지이자 승전지로서, '고려사(高麗史)' 기록에 따르면 1259년(고려 고종 46년) 몽골에 투항한 조휘 일당이 몽골 군사를 끌고 와서 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점령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산성방호별감 안홍민(安洪敏)이 야별초군(夜別抄軍)을 거느리고 나아가 습격해 모두 섬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제 한계산성은 대몽항쟁기 5차와 6차 침입 당시 만든 입보산성으로서 성곽 변화 과정과 고려 말 공민왕의 반원정책, 조선 초 동해안 일대의 왜구 침략 대비 등을 목적으로 축조한 점에서도 학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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