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고려궁지'에서 '조선'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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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려궁지'에서 '조선'을 보다
  • 관리자
  • 승인 2006.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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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고려궁지(江華高麗宮址)







사적 제133호로 지정된 '강화 고려궁지(江華高麗宮址)'. 이 곳은
고려가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년)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 있던 자리이다. 원종 11년인 1270년,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
할 때까지 39년 간 사용되다가 몽고의 요구로 궁궐과 성을 허물었다.



이후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인 이곳에 행궁(行宮)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고, 그 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東軒)과 이방청(吏房廳)만이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최근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고서 반환운동이 계속되고 있는데, 2003년
고려궁지 내에 소중한 보물이 보관되었던 외규장각(奎章外閣)을 복원해 놓았다.















▶ 승평문(昇平門)








왕궁의 정 남문이었던 승평문(昇平門)은 지금의 선원비각 주위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승평문은
삼 문(三門)으로 되어있으며 오직 임금만이 출입하고 외국사신도
옆 문으로 통용케 했다.















▶ 강화유수부동헌(江華留守府東軒)








강화유수부동헌(江華留守府東軒)은 오늘날 군청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던 관아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병자호란 이후인 인조 16년(1638)에 개수 한 것이며, 일제시대부터 해방 뒤까지 군청으로 사용했었다.



관호는 '현윤관(顯允館)'이고, 영조 때의 학자이자 명필이었던 백하 윤순(白下 尹淳)이 쓴 '명위헌(明威軒)'이라는 관호가 걸려 있다.















▶ 강화유수부 이방청(江華留守吏房廳) 






강화유수부 이방청(江華留守吏房廳)은 원래 강화유수부 육방(六房)인 이방(吏房), 호방(戶房), 형방(刑房), 예방(禮房), 공방(工房), 병방(兵房) 중 하나인 '이방청(吏房廳)'건물이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효종 5년인 1654년에 강화유수 정세규(鄭世規)가 건립해
관아로 사용하던 것을 조선 정조 7년 1783년에 강화유수 김노진(金魯鎭)이 중수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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