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명전에 되살아난 ‘헤이그 특사 3인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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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에 되살아난 ‘헤이그 특사 3인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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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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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헤이그특사가 파견된 지 100주년을 맞이하여 덕수궁 중명전에서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이 개최된다.



항일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헤이그 특사의 역사적 의미와 활동상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헌신을 되새기며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자 기획된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은 덕수궁 중명전에서 2007. 7. 14~9. 2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 세 특사의 사진과 이위종의 연설이 기재된 만국평화회의보







 







헤이그 특사란 1907년 고종황제가 이준, 이상설, 이위종에게 친서와 신임장을 주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회의에
파견한 특사를 말한다. 세 특사는 을사늑약 체결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폭로하고 이를 파기하려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특히 3인의 특사 중 이준은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헤이그에서 목숨을 잃는다.



전시내용은 “중명전과 고종황제와의 인연”, “을사늑약의 불법성”, “헤이그특사 파견과 고종의 국권회복노력” 등으로 구성되며,
일제에 의한 침탈과정과 국권회복 노력을 기울였던 상황을 역사적 유품 및 당시 사진 자료 등을 전시하게 된다.






 















▶ 중명전 외관


 





▶ 중명전 내부








 





이번 특별기획전 개최장소인 중명전(重明殿)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란 뜻의 경운궁에 속한 건물로서, 원래는
1897년 근대 서양식 건축으로 지어진 수옥헌(漱玉軒)이란 이름의 황실도서관이었다. 1904년 경운궁의 많은 전각들이 불에 타
고종황제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중명전이란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보이며, 순종 즉위 얼마 후까지 황제가 국사를 처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중명전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이며, 1907년 4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고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역사의 현장이다. 또한 특사 파견의 실패로 고종황제가 퇴위당하기도 하는 등
한국 근대사에 있어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중명전은 기구한 우리 근대사의 여정과 같이, 한때는 외국인의 사교클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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