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의 궁(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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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속의 궁(宮)
  • 관리자
  • 승인 2007.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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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德壽宮)은 조선의 궁궐로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경운궁은 광해군 시절인 1611년에 정릉동 행궁을 확장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원래는 흥경궁(興慶宮)으로 하고자 하였으나, 광해군이
“이것은 전대의 궁호이니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합당한 궁호를 여러 개 써서 아뢰라”고 하였으므로, 경운궁이라고 이름하였다.
본격적으로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고종 연간인 1896년이다. 이후 1897년부터 1907년까지 대한제국 시기에 황제가
정무를 보던 법궁(法宮)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4년에 불이 나 궁궐의 상당 부분이 소실된 후 중건이 시도되었는데, 당시 국가의
정치 상황이나 재정 여건상 궁궐 권역과 건물 규모에 적지 않은 축소가 있었다.







 
















덕수궁 입구의 대한문
현판








선조가 1608년 2월에 지금의 즉조당에서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덕수궁은 왕궁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꾸고 잠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 오게 된다. 그러나
광해군은 인목대비와 반목을 하면서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만을 남겨두고 창덕궁으로 옮기고,1618년에는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면서 경운궁을 '서궁(西宮)'이라 낮추어 부르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인조가 즉조당에서 즉위하면서
왕궁은 이곳에서 완전히 창덕궁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덕수궁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고종 말년이다. 명성황후 민씨가 시해되자 고종이 아관파천하여 러시아
공관옆에 있던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를 전후하여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는데, 석조전 ․ 정관헌
같은 서양식건물도 이때 지어졌다.

1908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창덕궁으로 옮겨가고 이곳 경운궁에 홀로 남게 된 고종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한문에서 나오자 보이는
덕수궁 전경







 






덕수궁의 건물 배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궁의 중심인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이 있는 부분이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거나 후문을 통해서 들어서거나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이 함녕전과 덕홍전이다.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이었고, 서쪽에 있는 덕홍전(德弘殿)은 임금이 평상시에 사용하며 귀빈을 접견하던 편전(便殿)이었다.

함녕전앞을 지나면 중화문이 나오고 그 안쪽으로 궁의 정전인 중화전이 있다. 중화전은 고종 광무 6년(1902)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처음 중층의 장대한 규모로 세워진 건물로, 2층으로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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