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된장, ‘대맥장’.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마음 - 청송 ‘대맥장’ 명인 성명례
상태바
보릿고개 된장, ‘대맥장’.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마음 - 청송 ‘대맥장’ 명인 성명례
  • 이민규
  • 승인 2025.01.09 1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은 아끼며 버티는 계절이다. 여름의 나눔이 풍요로움에서 비롯되었다면, 겨울의 나눔은 척박함을 함께 이겨내자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의 농작물은 아직 수확하기 이른 시기. 우리는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 부른다.

 

장도 마찬가지이다. 발효음식의 특성상 바로 만들어 먹을 수가 없기에 보릿고개 시기가 있다. 청송 성명례 명인의 대맥장은 장이 모자랄 때 빨리 숙성시켜 먹기 위해 만드는 속성장으로, 주로 봄에 담그던 장이다. 닥나무 잎으로 싼 메주를 발효시켜 장을 담그면 15일에서 20일 정도 후에 먹을 수 있다. 배고프고 어려운 시기에 볶아서 삶은 검은콩(검정 서리태)과 보리쌀로 만들어 색이 까만 것이 텅 빈 항아리를 보며 속이 탄 마음을 공감하는 듯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대맥장 명인인 성명례 명인을 만나 ‘장 담그기’ 문화의 보존과 전통 장 생산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식품명인 45호, 대맥장 성명례입니다.”

 

경상북도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아름다운 자연의 보고이다. 2024년 12월에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청송은 유형과 무형 유산 모두를 품은 곳이 되었다.

 

한국맥꾸룸
한국맥꾸룸

 

성명례 명인과 권혜나 전수자가 운영하는 ‘한국맥꾸룸’은 1989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한국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비닐하우스 안에는 숙성 중인 장독 3000여 개가 빼곡하다. 5중으로 된 비닐하우스는 급격한 기후변화와 해충, 그리고 이물질로부터 전통 장을 보호한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함으로써 위생 관리와 적정 환경 유지가 용이해졌고, 무거운 장독 뚜껑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작업자들의 업무 강도가 낮아졌다.

 

전통 장을 만드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마다 쌓이는 정보가 많아 엑셀을 활용해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38명의 정직원 중에는 컴퓨터 활용이 어려운 사람도 있어, 장독 관리에 필요한 핵심 정보는 일일이 손으로 적어 작업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배려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명인은 장을 담그는 일은 일 년 내내 사람의 손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기에 그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비닐하우스 속의 장독들
비닐하우스 속의 장독들

 

작업자가 확인하기 쉽게 장독 정보를 손으로 적어 매달아두었다
작업자가 확인하기 쉽게 장독 정보를 손으로 적어 매달아두었다

 

“장 담그기는 모두의 문화입니다. 공동체를 가문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어요.”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는 명인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음식은 일반 대중에게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문화이다. 명인은 많은 사람이 발효 음식을 맛보고 직접 만들어본다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 기술, 성품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국맥꾸룸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6명의 외국 근로자들은 명인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전통 장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알아가고 이를 고국과 나누는 모습을 여러 해 동안 봐왔다. 외국인들과 함께한 시간은 우리의 맛과 문화가 세계로 나아가기에 충분하다는 가능성과, 공동체의 정신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한국맥꾸룸 카페 ‘송주원’
한국맥꾸룸 카페 ‘송주원’

 

카페 뒤편의 체험장과 텃밭
카페 뒤편의 체험장과 텃밭

 

권혜나 전수자는 몇 년 전부터 장 만들기를 가르치는 활동을 시작했다.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던 장 담금 문화는 이제 가르쳐야 하는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명인과 전수자는 장 담금이 ‘우리’만의 비밀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하는 문화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체험 행사를 진행하여 사람들이 전통 장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의미있는 문화라도 고되기만 하다면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그래서 전수자는 장 담그는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기를 바란다. 그 마음은 현대적인 카페 느낌의 ‘송주원’에서 드러난다. 한국맥꾸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장을 배우고 커피와 차를 마시며 쉬며 전통 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 건물 뒤편에는 장독과 텃밭이 있는데, 장 담그기를 통해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져 있다.

 
 

“장 담그기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맛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한국맥꾸룸의 다양한 전통 장 제품들
한국맥꾸룸의 다양한 전통 장 제품들

 

전통을 지키면서 현대의 변화에 따라가려면 중심을 명확하게 잡아야 한다. 명인과 전수자는 장 담그기의 옛 전통과 정신은 유지하면서 현대의 방식을 접목하는 것을 항상 고민한다. 시행 착오를 거치며 지켜야하는 중심을 정하고 현대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전통’을 지키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는 한 이 고민은 영원히 해야 할 것이라며 명인은 웃었다.

 

매일 장독과 비닐하우스의 상태를 확인한다
매일 장독과 비닐하우스의 상태를 확인한다

 

명인이 지키고자 하는 중심 중에는 품질이 있다. 품질은 곧 맛이다. 성명례 명인은 장이 맛이 있어야 사람들이 찾고 맛이 있어야 계속 전해진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품질의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품질을 검사하는 장비부터가 만만치 않다. 장비 하나의 가격이 억대인데다, 한 번 산다고 평생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부담이 크다.

 

품질은 소비자의 구매 기준이기도 하다. 원재료부터 제조 시설과 완성된 제품까지, 수많은 품질 기준 검사와 인증 과정이 있다. 명인과 전수자는 그 많은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갖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새로워지고 까다로워지는 기준과 전통 장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규제는 오히려 전통 장을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는 느낌이다. 명인은 정부 부처와 산업의 실제 종사자들, 그리고 전통 장 명인들 사이에 더 많은 소통과 이해가 필요하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더 크고 다양해졌을 뿐, 이것도 ‘우리’인 거죠.”

 

대맥장 성명례 명인과 권혜나 전수자
대맥장 성명례 명인과 권혜나 전수자

 

장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음식이다. 전통이라는 단어에 갇혀 지나온 시대만을 고집한다면 전통 장의 미래는 밝지 않다. 기후변화, 식습관, 현대인의 기호, 소비 형태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자연이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듯 장과 문화도 진화를 하며 계속 맥을 이어가는 것이 순리라고 명인은 말했다.

 

현대적인 한국맥꾸룸의 카페 ‘송정원’. 전통 장을 맛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현대적인 한국맥꾸룸의 카페 ‘송정원’. 전통 장을 맛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한 가문 안에서 이어지던 장 담그기의 정신은 이제 더 큰 공동체에서 이어져야 한다. 전통 장이 지역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여기는 마음을 이끌어냈을 때, 한국의 장 담그기는 진정한 인류의 무형유산이 될 것이다.

 

기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이다. 그러나 힘들다는 이유로 다가올 미래를 외면할 수는 없다. 성명례 명인과 권혜나 전수자가 전통 장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력을 이어온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 전통 장과 장 담그기 문화의 가치를 인식함으로써 더 큰 공동체, 더 단단한 ‘우리’의 결속력을 다져볼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