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달러에 빼앗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100년만에 개관
고종이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주독립국으로서 조선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미국과 외교활동을 펼치기 위해 1889년 워싱턴 DC에 건립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이 강제로 박탈되면서 폐쇄되었다. 이후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일제가 단돈 5달러에 빼앗아 갔다. 아픈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2012년 정부가 사면서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이후 3년여의 걸친 복원공사를 끝낸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82년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인 5월 22일 개관을 한다. 개관 준비로 바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건길 이사장을 만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어떤 곳인가요?
“국민은 외국에 나가 있는 문화재라고 하면 대부분 약탈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우리가 선의로 기증하거나 문화 교류를 통해 나간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중 환수할 수 있는 것은 환수하고 환수할 수 없는 것은 현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개관한다는데 어떤 곳인가요?
“대한제국이 미국 워싱턴에 공사관을 (1889년에) 최초로 개설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공사관으로 기능했던 것은 20년이 안 됩니다. 그 이후에는 경술국치로 우리 외교권이 박탈됐기 때문에 실질적인 기능을 못 했던 이곳을 2012년에 사서 개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관하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어떻게 꾸며지나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이뤄졌습니다. 1층과 2층은 원래 공사관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예를 들면 집무실, 식당, 서재 등 생활공간을 당시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3층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일본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단돈 5달러에 빼앗아 갔었다는데 사실인가요?
“당시 고종황제가 2만 5천 달러를 주고 샀는데 일본이 5달러에 사 갔습니다.
이것은 공짜로 빼앗아 갔다는 것을 모면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5달러를 냈던 것 같습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백 년이 넘는 건물이니까 보수를 하려고 보니 파이프 등이 썩어있는 등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또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자료가 한정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도서관, 개인 소장 자료 등을 수집해서 복원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복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복원과정에서 귀중한 자료도 나왔다고 하던데 대표적인 것 하나만 소개한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결혼식 청첩장 등 외교 사료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있던 곳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외교단지였습니다. 하지만 주변이 개발되면서 대부분 다른 나라 공관들은 없어지고 우리 공관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로서도 상징성이 있고 또 한미외교 관계가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관일을 5월 22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1882년 5월 22일이 조미통상수교조약이 이뤄진 날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5월 22일에 개관식을 하는 것입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에 기업과 민간단체의 참여도 있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국고를 통해 건물을 사고 공사를 했지만, 국고 외에도 민간단체나 기업에서 협찬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라이엇 게임즈’ 는 공사와 전시관 조성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원했고 ‘스타벅스’는 공사관 안 정원을 가꾸는 비용을 제공했습니다.
또 ‘문화유산 국민신탁’ ‘재미한인재단’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앞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국외소재문화재는) 환수도 중요하지만, 현지에서의 활용도 중요합니다.
외국에 있는 많은 우리 문화재들이 수장고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 나라 국가나 박물관에 요청해서 우리 문화재를 많이 사람이 볼 수 있는 일에 노력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