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사 굴참나무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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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 굴참나무의 굴욕!
  • 관리자
  • 승인 2009.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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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 입구, 번뇌와 선경(仙境)의 통로에 20년 전에 사망한 괴물이 나자빠져 있다. 천년을 넘긴 세월 불영사 입구에서 수많은 역사를 지켜봐왔던 원로 중 원로 이 괴물을 어찌할꼬. 넘어진 괴물은 여기저기 잔뜩 돌무더기를 쌓아올린 채 넘어져 그 세월을 보내고 있다.



살아서 1,300년을 버틴 역사의 산 증인, 통일신라시대를, 또한 고려사를, 조선의 역사를 함께 하였던 굴참나무, 비단 이것 뿐이랴, 역사의 질곡인 일제 36년간을 버텨온 민족의 산증인 굴참나무, 하지만 세월 앞에 생의 저편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천연기념물 157호 64년 지정 하지만 지정 후 20여년 만에 폐목이나 다름없는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 정승 벼슬을 했던 나무가 이제 지나가는 개도 안쳐다보는 신세로 전락하였으니 격세지감이 여기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참고로 굴참나무는 산허리의 해가 잘 비추는 양지쪽의 약간 마른땅에서 잘 자란다. 수피(樹皮)에 코르크가 두껍게 만들어지며 깊게 갈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긴 타원형의 잎은 어긋나고 잎맥이 9~16쌍 나란히 나와 있으며 잎 가장 자리에는 뾰족한 톱니가 나 있다. 굴참나무 수령 15년 정도 되면 코르크 껍질이 약 1㎝ 정도로 두꺼워진다. 이때부터 코르크 껍질을 벗겨낼 수 있는 것이다. 껍질을 벗겨내고 나서 약 8~9년이 지나면 다시 두꺼운 코르크 껍질이 생기는데, 나무 수령 약 40년 될 때까지 벗겨낼 수 있다.


세월을 벗겨내듯이 굴참나무 껍질은 때로는 인간에게 유익한 땔감으로 약재로도 사용되었다. 40년 동안 벗겨낼 수 있고, 그 세월이 1,300년이었으니 가히 불영사 굴참나무는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간 것이다. 정말 아낌없이!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 흉물 그 자체로 방치되어 애물단지 되었고, 그 나무가 천연기념물이었다는 푯말만 더욱 슬프게 인객을 맞고 있는 것이다. 굴참나무 등 뒤로는 불영사 스님들의 부도전이 위치하는데, 어쩌면 이 공간은 굴참나무와 더불어 ‘죽음’의 공간인지도 모른다.



스님들은 열반하여 각각이 하나의 표지로 서 있는데 이 쓰러진 굴참나무는 길거리에 방치되고 있으니, 열반하신 스님들의 마음이 편할까 염려스럽기 짝이 없다. 인걸은 간 데 없고, 수령 다한 나무는 폐목이 되어 세월의 변방이 되어 죄인 취급받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넘어진 나무 등걸이를 가운데 두고 작은 정원, 비석이라도 만들어 쓰러진 나무의 역사성을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어쩜 이리 인간사가 야박한지, 굴참나무의 영험한 기운이 혹시라도 다시 살아난다면 큰 휩쓸기로 바람을 일으켜 지나가는 객의 등짝이라도 후려치지 않을까. 울산에서 왔다는 관광객은 넘어진 나무에 돌탑을 올려놓으면서 무심한 한숨 결에 “에이고, 야박하구먼.” 하고 뒤돌아선다.



‘죽음’을 잘 대우해주는 것이 우리네 역사다. 제 아무리 말 못하는 굴참나무지만 아담한 정원을 꾸며 1,300년의 역사에 대한 보담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자연을 바라보는 의식 있는 배려인 것이다. 죽는다고 굴참나무가 가지고 있었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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