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로 잃어버린 전통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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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로 잃어버린 전통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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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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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복원공사 현장 가림막




광화문 일대가 연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광화문~세종로사거리~청계천을 잇는 대규모 광화문광장이 1년 3개월의 공사를 마치고 지난 1일 개장했기 때문이다.



광장을 따라 주욱 올라가다 보면 산, 달, 단청 그림 총 2,616개로 모자이크된 초대형 가림막을 만나게 되는데 이 가림막 뒤편에는 2010년 상반기에 복원공사가 마무리 될 예정인 광화문이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 태종~세종 때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원되었지만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에 신축되면서 1927년 궁궐 동측 담장으로 옮겨졌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포탄을 맞고 파괴된 것을 1968년 경복궁 정면에 다시 세웠으나 조선총독부청사의 축에 맞춰 건립되면서 원래 위치에서 북측으로 11.2m, 동측으로 13.5m 떨어진 위치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시공된 바 있다.



현재 광화문은 근정전-근정문-흥례문과 직선축을 이루는 원래 위치에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1925년 작성된 실측설계 도면과 사진기록 등의 고증을 통해 높이 7m의 석축과 13m의 목조누각으로 시공될 예정이며, 광화문 앞 월대 일부와 궁궐 담장도 함께 복원될 계획이다.






전시 중인 해체된 광화문 부재


복원공사를 위해 2007년 7월 해체 된 광화문 철근콘크리트 부재 일부는 현재 경복궁 안쪽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 앞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이 부재들은 1968년 복원 당시 철큰콘크리트로 복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던 광화문의 슬픈 옛모습을 보여준다. 콘크리트로 목조건물의 모양을 흉내낼 수 있었겠지만 본래 광화문이 가진 멋과 가치는 소멸되었다. 60년대 산업화와 공업화의 목소리에 묻혀 잊혀져버린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녀(春舌)


추녀는 모서리 기둥 위쪽의 대각선 방향으로 경사진 부재로, 전통건축의 곡선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추녀쪽으로 갈수록 지붕이 약간 솟아있어 육중한 지붕이 시각적으로 안정적이고 가벼워 보이는 효과가 있다.






내부계단(階段)


광화문 내부의 문루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계단폭은 약 1.5m로 경사가 급한 편이다.






우물반자(盤子, 班子)


반자는 지붕 또는 천장의 구조물을 가리기 위한 실내구조물로 궁궐, 사찰 등의 건물에서 주로 사용한다. 우물반자는 우물정(井)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바둑판 모양의 틀에 연꽃문양 등의 청판을 끼워서 만든 천장이다.






여장(女墻)


공격과 수비를 위해 총구 높낮이를 달리한 성벽 위의 낮은 담장. 광화문 여장에는 하늘, 땅, 불, 물, 못, 우뢰, 바람, 산 등 8괘로 구성된 문양이 장식됐다.






귀공포(隅包)


광화문 문루의 모서리 기둥 위쪽에 짜놓은 공포. 공포는 처마의 무게를 떠받쳐 기둥과 벽으로 분산시켜주는 부분으로, 귀공포는 십자맞춤과 45° 각도의 맞춤부재까지 있어 가장 복잡하다.






주간포(柱間包)

광화문 문루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 수평으로 연결한 부재 위에 얹은 공포.






주심포(柱心包)

광화문 문루 기둥머리 바로 위쪽의 공포.



비록 여기저기 잘려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이지만 이것들은 산업화에 쓰러져버린 우리의 전통문화를 나타내는 표본들이다. 우리의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 조각들은 광화문 복원 이후에도 전시되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산업화로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 정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철거된 광화문의 콘크리트 부재들을 둘러보면서 복원될 광화문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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