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匠人] 신응수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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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匠人] 신응수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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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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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장 신응수 20년째 경복궁 원형 찾기에 매달린 집념, 사람은 그 시간만큼 늙어가고, 장인으로서의 끈기와 집념은 예술혼의 노래가 되어 천년을 살아 숨 쉰다. 넉넉한 웃음소리가 아름다운 신응수 대목장, 그가 드디어 600년 역사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정직한 목수로서 나무에게 말하고 있다.


"나무는 나에게 있어 삶 그 자체였다”라고 말하는 신응수 대목장. 광화문 복원 그가 숙명의 숙제로서 남겨놓은 수많은 나무 이야기 중 그 몇 번째 매듭을 열어갈 것인지. 그가 열어간 세계 중 이번 이야기는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인가.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통해 단 하나의 인생을 오로지 나무와 그 나무를 다루는 장인 정신으로 이 시대를 살아온 그가 말하는 목수의 세상은 과연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나무를 통해 바라본 세상 이야기 그에게 길을 물어봤다.






▲ 무형문화제 제74호 대목장 보유자 신응수


Q : 조선 궁궐 쪽에서는 국내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숭례문 화재를 보시면서 느꼈을 감회는?

A : 모든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현판이 무너지고 2층이 완전히 붕괴 되었을 때 심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지금에 와서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Q : 내부적으로 대목장들이 화합하지 않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 화합하지 못하는 데는 대목장들의 책임도 있다. 대목장이 3명이 배움과 문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복구를 하면서 모든 장인들이 화합이 되어야 한다. 문화재청에서도 주관을 가지고 장인들끼리 조화롭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이 시대에 장인으로 태어난 죄인의식을 가지고 사심을 버리고 복구될 때 까지 최선을 다해 참여해야 한다. 숭례문을 가지고 명예나 돈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 무형문화제 제74호 대목장 보유자 신응수


Q : 처음에 어떤 계기로 전통건축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기능을 전수해주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A : 옛날 어려운 시절에 목수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할 무렵 일찍 올라왔지만 운이 좋았던거 같다. 58년도에 올라와 1년 후에 바로 이광규 선생님을 만났고 그 후 1962년에 숭례문 중수때 스승의 스승인 조원재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 두 분의 선생님을 일찍 만난 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었다.


Q : 선생님의 건축물들을 보면 그저 아름답다는 탄식이 나오는데 인생은 어떠하셨는지?

A : 남들 보기엔 아름답고 좋은 것 같지만 지금까지 오는 과정은 험난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현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무를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지 늘 일하는 생각뿐이다. 복원공사는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또 뒤 늦게 나타나 다시 고쳐 나가야 한다. 목재나 인건비가 들어가지만 천년 대대로 물려줄 유산인데 쉽게 갈 수는 없다. 아는 순간 고쳐야 한다. 경북궁도 91년도부터 하고 있는데 사진이 뒤늦게 나와 해체해서 다시 짓고 하는 과정이 많았다. 광화문도 고증에 가깝게 좋은 목재와 자재를 사용해 조상들의 기법을 재연하려 하다 보니 항상 고민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 복원진행중인 광화문 현장


Q : 숭례문 복원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이 좋은지?

A : 많이 늦었고 지금까지 장인들이 참여를 못하고 있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목재가 불에탄 성격이 어떠한지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하나하나 체크해야 한다. 나무가 일부 준비되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국보 1호니만큼 좋은 나무을 사용해야 한다. 국민들로부터 기증받은 나무 또한 사용할 수 있는지 장인들의 검증이 필요하다. 좋은 나무를 선별해 사용하려면 충분한 자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준비과정이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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