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匠人] 이종한 장인
상태바
[이 시대의 匠人] 이종한 장인
  • 관리자
  • 승인 2009.09.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종한 장인


위아래로 교차되는 선들이 정갈하고 반듯하다. 도드라진 꽃무늬가 복잡한 듯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진다. 우리 전통 창호(窓戶)문살 얘기다.



대구에 있는 이종한 장인의 작업실에는 곳곳에 목재와 창호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우리나라 창호문살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던가 싶다.



“창호문살의 무늬는 아(亞)자무늬나 정(井)자무늬, 빗살무늬, 꽃살무늬 등 다양한데요, 꽃살 도 연꽃무늬, 모란무늬, 국화무늬 등으로 나뉘어요. 또 빗살무늬에 도드라진 꽃무늬를 새기면 솟을빗꽃살무늬가 되지요.”



문살은 통판 하나를 파내 조각하는 기법이 있는가하면 문살마다 각각 조각해 나중에 끼워 맞추는 기법이 있다. 문살 몇 개를 끼워 맞추느냐 에 따라 2분법, 3분법, 4분법 등으로 구분하는데 조금만 조각을 잘못해도 나중에 문양의 연결부위가 어긋나고 만다.



“창호 하나 만들려면 공이 굉장히 많이 들어요. 이런 문양들도 요즘은 기계 힘도 빌리지만 이런 세세한 부분들은 하나하나 다 손으로 조각하는 겁니다. 기계로 한 것들은 모양이 천편일률적이어서 금방 티가 나지요.”



수많은 공구 중에 연장 몇 개를 추려내더니 나무에 연꽃잎을 조각해 보인다. 뭉툭한 나무에 조각도가 지나갈 때 마다 꽃잎이 한 장, 한 장 솟아나온다. 50여 년간 매일같이 해온 작업이다. 장인 스스로 생각해도 어떻게 50여 년이나 이 일을 했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천직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오직 어떻게 창호만, 창호 쪽 목수 한 가지만 했나…그것이 이제 생각하면 그래요…보통 보면 친구들은 하다가 다른 것도 하고 변형이 되고 그렇잖아요. 나는 평생 이것밖에 다른 것을 안 해요. 아무것도 다른 것을 해본적도 없고 이 일만 계속 이제까지 했어요.”



이종한 장인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이렇게 수십 년을 밤낮없이 일하고 연구해 쌓아온 장인들의 기능이나 가치관에 일률적으로 순번을 매기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같은 창호문을 짜도 이 기술자는 살문을 잘하고… 이렇게 다 특색이 있어요. 다 버리기 아까운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무형문화재 심사를 할 때 일률적, 단편적으로 몇 시간이나 하루 실사를 가서 그중에서 누가 낫다고 지정하고 떨어진 사람은 그야말로 실패자로 생각하고 그런 것이 안타깝고요...”



한참 이야기를 하던 이종한 장인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무 조각을 주워 챙겨놓는다. 무엇에 쓰려는 것인지 묻자, 버리기 아까워서 주워 모으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창호에 쓰일) 나무 하나가 생산되려면 시간적으로 해도 최하 50년~100년 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들은 그냥 버리는 자투리 나무 조각 하나가 금이나 은보다 소중하다고 하는 이종한 장인. 작업장 한쪽에 늘어서 있는 창호작품들에서 장인의 소박함과 꼼꼼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하다.








[이종한 장인 인터뷰]



-처음 목수일을 시작했을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저는 어릴 적에 어려운 가정에 태어났는데요. 그때 당시 초등학교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어요. 다 산업현장에 일하러 간다든지, 농사를 짓는 다든지 이런 식이었지요. 제 고향이 동대구역 효목동인데, 12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에 뒷산에 영남대학 전신인 청구대학이 지방캠퍼스처럼 왔어요. 그곳에 건축과 실습현장이 생겼는데요. 그게 63년도지요.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급사를 구하는데 우리 동네 애들이 다 거기로…. 나는 그때 친구하고 둘이 건축과에 갔지요. 그때 그 일이 인연이 됐어요.



- 스승 백상운 선생님을 만난 것도 그때쯤인가요?



한 6개월 정도 대학생들이 와서 실습하고 나면 청소도 하고 공구도 챙기고 그랬는데요. 백상운 선생님이 실습장에 일을 하러 들어오더라고요. 알고 보니 당시 시중에 목공기계가 별로 없었는데 청구대학이 학생 실습용으로 일본산 기계를 수입해서 들여온 거예요. 그래서 그 기계를 임대해서 기술자들이 썼던 거지요.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서 15년을 따라다녔습니다.



- 12살 때부터 지금까지 목수 일을 하시면서 그 중에서도 창호 쪽만 꾸준히 하셨다고 들었어요.



내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경력으로 말하면 47년 정도 되지요. 그러면서도 오직 어떻게 창호만, 창호 쪽 목수 한 가지만 했나…그것이 이제 생각하면 그래요…보통 보면 친구들은 하다가 다른 것도 하고 변형이 되고 그렇잖아요. 나는 평생 이것밖에 다른 것을 안 해요. 아무것도 다른 것을 해본적도 없고 이 일만 계속 이제까지 했어요.







▲ 이종한 장인



- 선생님께서는 현재 대구시무형문화재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신 것으로 압니다.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관련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인들의 기능이라든지 그런 가치관에 대한 것을 우리가 문교부 교육정책처럼 일률적으로 순번을 내세우는 것을 난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같은 창호문을 짜도 이 기술자는 살문을 잘하고… 이렇게 다 특색이 있어요. 다 버리기 아까운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률적, 단편적으로 몇 시간, 하루라든지 실사를 가서 그중에서 누가 낫다고 지정하고 떨어진 사람은 그야말로 실패자로 생각하고 그런 것이 안타깝고요. (중요무형문화재) 소목장에 이번에 8명이 신청했는데, 많이 되어봐야 1, 2명 될 거예요. 나머지 7명은 얼마나 아까운 사람이에요. 그것도 영남지방에 한명 뽑는 것이 아니고, 서울, 경기, 영남, 진주, 저 충북까지 있다고 하던데 그 사람들까지 전 8명 다 해줘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정책을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꼭.



- 50여 년간 매일 나무를 다루셨는데요. 선생님에게 나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나는 나무를 '내게는 참 소중한 목재'라고 하는데요. 절대로 나무가 값싼 재료가 아니다…. 나무는 절대 값싼 재료가 아니고…나무 하나가 생산되려면 시간적으로 해도 최하 50년~100년 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워낙 여기도 나무, 저기도 나무…흔하게 많다 보니까…. 절대 나무는 값싼 재료가 아니다. 금이나 은보다도 나는 더 소중하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