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중심, 쇠울타리에 갇힌 참성단
상태바
한반도의 중심, 쇠울타리에 갇힌 참성단
  • 관리자
  • 승인 2005.09.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반도의 중심, 참성단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의 마니산 정상 부근에 있는 참성단은 1964년 7월 11일 사적 제136호로 지정된 남한 유일의 단군
유적지이다. 단군 왕검이 민족만대의 영화와 발전을 기원하며 춘추(春秋)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으로, 단군이 직접 제사를
올렸다 하여 ‘제천단’이라고도 불린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있는 마니산 참성단은 한라산의 백록담과 백두산의 천지까지의 거리가 똑같다고 한다. 참성단은 성소(聖所)인 윗단은
둥글게, 제사를 올리는 아랫단은 네모지게 쌓았는데 이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우리 선조들의
천지관이 반영된 것이다.






 







 



▶마니산 정상 우측으로 보이는 참성단 외부 모습

 





 






참성단의 정확한 축조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수 또는 수축에 관한 기록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참성단 보수 기록이 있으며, 인조 17년(1717) 강화유수 최석항이 전등사 승 신묵에게 명하여 참성단을
수축케한 금석문도 전한다. 또한 참성단 동쪽 등산로에서 약 50m 거리에 있는 참성단중수비에는 숙종 26년(1700)에 보수한 기록이
남겨져있는데 국가 차원의 제천의식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시대에 단순한 천문대로 취급

일제시대에 참성단은 일종의 천문대로 취급되었다. 강화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참성단 인근에 제궁(祭宮)이 있어 그곳에 제기(祭器)를
보관했는데 일본 경찰이 이를 빼앗을까 걱정이 돼 마니산 중턱에 묻어두었다고 한다.



정기어린 산천 곳곳에 쇠말뚝을 박는 등, 잔인무도한 문화말살정책을 편 일제강점기에 참성단은 자의반타의반으로 방치되었다가 광복 이후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쟁 때 제단 한쪽이 부서졌으나 화도면 주민들이 원래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참성단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 104m, 높이 8m의 쇠울타리

 

저작권자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