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의 숨을 불어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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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의 숨을 불어 넣다
  • 관리자
  • 승인 2010.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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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드잡이를 아십니까?” 라는 질문에 과연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Yes”라고 답할까? 거의 대부분이 “듣보잡이죠”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나에게도 드잡이는 듣보Job이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몇 번이고 들어봤을지언정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란을 적으라고 했을 때도 대통령, 과학자, 연예인, 공무원 정도를 생각해 내는 내가 드잡이는 너무 생소했다.


취재를 가기 전 드잡이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느껴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고작해야 내가 알아낸 것은 사전적 의미. 기울거나 내려앉은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작키, 탕개(턴버클)등을 이용해 바로잡는 일, 또는 기둥, 보등의 큰 부재를 들어 맞추는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건축물을 그대로 옮겨? 그냥 다시 지으면 되지 번거롭게 옮겨?”


라는 이해불가의 의문이 생겼다.


“전통은 보존해야 그 가치가 있는 거야. 무조건 새 것으로 바꾸면 그게 어떻게 옛 것이겠어. 그건 그저 새로 만들어낸 옛 것의 모습일 뿐이야.”


기둥의 맨 밑 부분만 바뀌어 “왜 이 기둥은 다 안 바꾸셨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드잡이 전문가 홍성표 선생님(74, 이하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찌릿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애초부터 내 인터뷰의 시작이 잘 못되었던 것이었다.


내 인터뷰의 시작은 이랬다.






▲ 청원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


서울에서 출발해 장차 4시간을 달려 충북 청원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한 길인데다가 긴 시간 차 안에 박혀 이동하고 있어 굉장히 지쳐있었다. 가을 논이 노랗게 익은 것도 보고 높이 솟은 똑같은 모양의 공장들도 보며 선생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오래된 슈퍼와 식당이 붙어 있는 곳에서 만난 선생님은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동네 할아버지의 느낌이었다. 오느라 고생했다면서 커피를 하나 사주시고 취재팀을 현재 드잡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곳으로 인도해주셨다.






▲ 드잡이 장소로 향하고 있는 취재 팀


양옆으로 줄지어선 오솔길과 소가 열심히 자라고 있는 농장들을 지나 도착한 곳에는 낡아 보이는 전통가옥이 보였다.






▲ 보성 오씨 사당(祠堂)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곳이었는데 입구를 들어섰을 때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어서 많이 봤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다 “제사를 여기서 지내고, 관리인이 여기 살았었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내가 와 있는 곳이 「보성 오씨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서 많이 봤다 느낀 것도 향교 안에 있는 사당을 본 적이 있어 그런 것 같다.






▲ 보성 오씨 사당의 현판


대종문(大宗門)이라 이름 붙은 현판이 눈에 띄는 이 사당 앞에는 「보성 오씨 사적비」라는 커다란 비석과 영오지(永吳池)라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보성 오씨」의 산소가 있었다.






▲ 위에서 부터 시계 방향으로, 보성오씨 사적비, 보성 오씨 산소, 연못


민간인이 했다고 하기에 사당이 너무 잘 되어 있어 “이것도 나라에서 관리하는 건가요?”하고 물었더니 “아니, 보성 오씨 집안이 관리하는 거지. 보물로 지정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 일을 맡겼”다며, 허허 웃으셨다.


어떤 유형문화재이건 보물이나 국보로 인정받기 위해선 선조들이 지켜온 옛 것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보성 오씨 가문이 선생님께 이 일을 맡긴 것도 바로 옛 것의 모습을 다시 되찾아 놓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전에 보성 오씨의 가문이 사당을 보수한 적이 있는데, 콘크리트 벽과 못, 시멘트 등으로 보수를 해 놓아서 전통 가옥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선생님이 이 일을 맡게 되면서 사당의 모든 부분을 전통방식으로 보수하고 계셨다. "앞으로 사당 주변에 쳐진 담이랑 주변 땅도 모두 진흙과 기와로 쌓아 올리려고 해. 옛날에는 이런 콘크리트가 없었잖아"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전통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과 함께 일하시는 주사님(홍선생님께서 함께 일하시는 분들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들은 우리가 도착했음에도 훼손된 벽을 보수하기 위해 진흙에 지푸라기를 섞고, 대나무로 뼈대를 세워 그 위에 손수 벽을 쌓아가고 계셨다. 하다 못해 나중에 벽이 쌓이면 대나무조차도 하나하나 연결할 때 일일이 노끈으로 묶으셨다. 옛 것을 사랑하고 유지하려는 드잡이 장인들의 마음이 깊이 전달되었다.






▲ 벽 보수 작업


그러나 이 일은 드잡이 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의 놀라움은 바로 사당 기둥 교체에 있었다.






▲ 교체된 사당 기둥


위 사진은 사당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에 딱하고 붙어 있는 기둥의 한 부분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만 양쪽 벽과 지붕은 일제 건들지 않고 오로지 기둥만을 뽑아 새로운 나무로 교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기둥을 빼내기 전에 지붕을 받칠 또 다른 드잡이를 먼저 설치하는 거야. 근데 이 마루 위에 드잡이를 설치하면 마루가 손상되거나 할 수 있어서 바닥에 드잡이를 설치해야 해. 그래서 마루를 뽑아내 드잡이를 설치하는 거지. 그 다음에 교체하는 거야.”


너무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나는 당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보통 건물을 새로 인테리어 할 때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 하다못해 그 주변의 벽도 되도록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게 일반적인 인테리어 방식이다. 하지만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교체가 된 것이다. 입이 떡하고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고, “대단하세요.”라는 말만 연거푸 쉬지 않고 나왔다.


이게 드잡이 장인들의 힘이었다.


취재 내내 한국에 이런 놀라운 기술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지만, 「드잡이 기술」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이런 기술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세계 어디를 봐도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기술인데 말이다. 현재의 건축 기술이 매우 놀라워서? 아니면 기술자가 너무 많아서? 그러나 내가 알기론 한국에 알려진 드잡이 장인은 겨우 8명뿐이다. 그들은 모두 전통 방식으로 보수를 하고 있고, 현대식의 공구를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톱뿐이다. 하다못해 일반 현대 건축에서 드잡이로 사용하는 쇠기둥도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나무를 잘라 드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윤, 전통방식의 고수도 있겠지만 옛 것이 현대식의 차갑고 딱딱한 것에 의해 손상될까 우려되어서라 한다.






▲ 위부터, 곡선이 살아있는 사당 안의 멋스러운 지붕, 드잡이를 설치했던 곳에 남은 자국


실지로 드잡이 작업을 한 사당의 지붕을 보면 드잡이를 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나무 드잡이」는 지붕의 형태대로 모양을 내어 대는데다가 지붕과 같은 재질의 나무이기에 자국이 심하게 남지 않는다. 남았다 하더라도 사진에서처럼 그저 흙먼지가 묻은 정도이다. 하지만 현대식 「쇠기둥 드잡이」는 지붕의 모양대로 변형도 불가능하고, 나무보다 강도가 쎄서 나무에 심하게 자국이 남게 된다. 현대식의 구조물이 옛 것의 아름다움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만 봐도 드잡이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지 않는가. 그저 「문화재 관리청 등록」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문화재가 우리의 삶에 있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한 번도 숭례문을 보지 못한 사람이나, 매일 같이 숭례문을 지나치는 사람이나 한국인이라면 모두 그날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고 가슴 아파했다. 이게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옛 것을 옛 것으로 지키는 드잡이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40년 됐어. 나랑 35년 같이 일한 친구가 있는데 나이가 들어 힘들다고 일하러 안 오더라고.”며 넌지시 장난스러운 말씀을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에서 혹시나 드잡이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었고, 더 이상 머뭇거릴 시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디 홍성표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드잡이 장인들이 한국은 물론 세계의 보호를 받는 전통 문화 지킴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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