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문화는 변해도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는 지켰으면
삼베는 수의가 아니었다. 상주 완장도 잘못된 것
[인터뷰] 정종수 프리드라이프 한국장례문화연구원장
언젠가부터 전통 장례는 볼 수 없어졌고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의 삼일장이 보편화됐다.
실생활 속에서 많이 바뀐 문화 중 하나가 장례문화로 이제는 강동구 바위절호상놀이(서울시 무형문화재)나 부여용정리상여소리(충청남도 무형문화재) 등에서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빠르게 바뀐 장례문화 속에서 문제는 잘못된 장례문화가 전통인 것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종수 원장은 국립고궁박물관장과 국립춘천박물관장을 거쳐 현재는 문화재청 무형분과 문화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국립고궁박물관장을 지낸 정종수 프리드라이프 한국장례문화연구원장은 시대에 따라 문화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잘못된 문화가 마치 전통인 양 자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30여 년간 상·장례를 연구해온 정종수 원장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장례 문화가 삼베수의라고 했다.
예전에는 상주가 죄인이라는 인식이 있어 그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입었던 것이 남루하고 거친 소재의 삼베옷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1934년 의례준칙을 통해 명주나 비단이었던 수의를 상주가 입던 삼베로 바꿨다.
정 원장은 또 하나 잘못된 장례문화가 검은 양복과 상주의 완장이라며 검은 양복은 서양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화복이 되고 여기에 완장문화가 겹쳐진 국적 불명의 형식이 지금 우리 전통으로 잘못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거친 삼베는 부모에게 입히고 상주는 깔끔한 정장과 완장을 차게하는 것으로 바꿨다는 것이다.정종수 원장은 시대가 변하면 문화는 변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전통은 누군가는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례는 학계에서도 인기가 없는 분야라 연구자가 많지 않다며 실제로 서점에 가보면 상·장례와 관련된 단행본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정 원장은 요즘 한 상조회사가 장례식장마다 만들고 있는 장례전시관을 통해 상·장례 문화를 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은 22㎡(6.5평)와 40㎡(12평)였지만 이 작은 전시관을 만드는데도 전 문화재청장, 고고학자, 미술사 전공자 등 최고 전문가들을 심의위원으로 초빙해 유물선정과 조언을 받았다. 규모는 작지만 내용 면에서는 어떤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정 원장의 설명이다.
정 원장은 요즘 장례식을 보면 뭔가에 쫓기듯 치르기에 급급한 것 같다며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는 갖췄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라며 특히 노숙자나 종로 고시원 희생자처럼 가족이 없거나 어려운 분들을 떠나보낼 때는 더 예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정종수 원장과 22일 인천 쉴낙원 한국장례문화전시관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상·장례의 정의가 뭔가요?
“원래는 장례하고 상례가 있는데 장례는 시신을 관에 넣어서 땅에 묻는 과정까지를 장례라고 해요. 상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수의를 입혀서 땅에 묻고 탈상해서 상주가 상복을 벗을 때까지의 기간이에요. 그것이 삼년상이죠. 장례는 상례 속 일부분이에요. 요즘 상례는 거의 없어졌어요. 삼년상을 하는 곳도 없고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지금은 변형된 장례풍습만 남아있는 것이죠.”
-장례문화연구를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들어간 후 (학위)전공을 정해야 하는데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장례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전공을 정하고 보니까 너무 범위가 넓고 어려운 거예요. 그래도 이 분야는 남들이 하지 않으니까 내가 하면 훨씬 앞설 것 같아서 하게 된 것이죠.”
-장례를 공부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사실 ‘장례를 전공한다.’ 이렇게 연구한다고 내놓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최근 들어 왕실문화연구가 전보다 활발해지면서 왕실의 국장 등이 조금씩 다뤄지고 있는 수준입니다.
서점에 가서 봐도 장례문화에 대한 단행본은 거의 없어요. 그 이야기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적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례·상례를 공부해서는 취직이 잘 안 된다는 거예요.”
-장례문화 중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나요?
“요즘에는 전부 삼베로 수의를 만들어 입히는데 이것을 전통적인 수의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이것이 언제부터 바뀌었느냐면 1934년도에 일제가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너무 사치스럽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비단과 명주를 썼던 수의를 전부 베나 광목으로 쓰라고 아예 법으로 규정했어요. 그랬던 것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보니 삼베가 최고의 수의로 둔갑한 것이죠.”
-예전에는 삼베로 수의를 만들지 않았다는 건가요?
“조선시대 무덤을 이장하다 보면 수의가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그중에 한 번도 삼베로 수의를 만든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럼 수의로 어떤 옷을 준비하면 되나요?
“평상시에 본인이 좋아했던 옷. 아니면 광목으로 깨끗하게 해서 입혀드리면 돼요. 비싼 수의를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결혼식도 작은 결혼식 많이 하잖아요. 장례식도 비용을 적게 하기 위한 작은 장례식 붐이 서서히 일어날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장례문화가 또 있나요?
“장례식을 하면 하나같이 검은색 옷을 입잖아요. 서양에서 장례는 엄숙해야 한다고 해서 온 것인데 이것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화복이라고 해서 입은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왼쪽 팔에는 완장을 두르고 왼쪽 가슴에는 리본을 달고 있어요. 일본의 것을 그대로 장례식장에서 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된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죠.”
-소규모 장례전시관을 개관했다고 하는데 어떤 곳인가요?
“한 상조회사로부터 5월 김포에 장례식장을 오픈하면서 우리나라 장례문화 전시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도면을 주는데 면적을 보니까 정확하게 22㎡(6.5평)이에요. 여기에다가 어떻게 전시관을 만들지 상당히 고민이 되더라고요.
고민한 결과 ‘좋다. 내 스타일대로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30여 년 동안 장례 문화를 공부했으니까요.
그래서 시대를 나누지 말고 어느 한 시대만 넣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시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다 넣기로 했습니다.”
-유물, 자료 선정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던데?
“예전에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던 분, 박물관에 계셨던 고고학자, 미술사 전공자 등 그 분야 전문가들이 심의위원으로 함께했습니다.
예를 들어 ‘목관이다’라고 하면 실제로 관을 짜는 목수를 불러서 하나하나 점검해 유물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고 가격을 매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국립박물관에서 하는 절차를 거의 따라서 했기 때문에 훨씬 더 신뢰가 가죠.”
-전시관에 있는 유물과 자료 몇 가지 소개한다면?
“유물로는 고려 말, 조선 초기. 고려시대 석관 지석 등이 있습니다.
자료는 정조 대왕이 돌아가신 후 국장을 치를 때 서울 궁에서 수원 화성까지 장례절차 행렬을 그대로 그린 그림이 있어요. 이것을 의궤라고 했는데 그 의궤를 모사했어요.
-장례문화는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통을 지킬 수 있을까요?
“형식은 변할 수밖에 없어요. 장례도 그럴 수밖에 없어요. 문화는 서서히 우리가 바꿔 가는 것이죠.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
요즘 영결식을 보면 그냥 가기 바빠서 마치 도망치듯이 하는 거예요. 그분이 장관을 했던 평범하게 지냈든 상관없이 마치 행사를 처리하듯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어요. 그 절차(혼 부르기, 혼백 만들기, 발인제 등) 몇 개가 있는데 그런 것만 지켜도 고인에 대한 예를 다 할 수 있어요. 시간도 많이 안 걸려요. 특히 노숙자라든지 최근에 종로의 고시원에서 돌아가신 분들처럼 유가족이 없거나 어려운 분들에 대해서는 더 최소한의 의례는 지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끝으로 계획이 있다면?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전통을 알면서 현대에 맞게끔 형식을 적용하는 일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시작이지만 앞으로 유물들을 계속 모으게 되면 나중에 몇 천 점이 될 거예요. 그중 소중한 유물을 골라 세계장례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