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후손, 일본 총리에게는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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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후손, 일본 총리에게는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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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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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공사 중인 건청궁 주변


 

1895년 10월 8일 새벽, 한국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 공사 미우라의 지휘 하에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처소인 경복궁 내 건청궁에 48명의 일본인 자객이 침입했다. 그들은 고종을 능욕하고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해 그 주검을 불에 태웠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난 오늘, 11일 오전 9시 경에 을미사변 주범 중 한 명인 구니모토 시케아키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84)
씨와 그 측근들이 건청궁 앞에 모였다. 늦었지만 조부의 죄를 대신 사죄하겠다며 한국에 온 가와노 다쓰미 씨는 어제 10일,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묘가 있는 경기도 홍릉을 들러 1차 참배를 올리고 오늘 이어 명성황후의 시해 장소인 건청궁을 찾은 것이다.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듯한 가와노 씨는 측근의 부축을 받으면서 경복궁 건청궁 참배에 이어 과거 조선왕궁의 곳곳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수학여행을 온 한국 학생들은 가와노 씨를 보자 그의 방문 목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일본 정부는 이제껏 을미사변의 배후를 정부와는 무관한 것으로 부인해왔으나 이심전심으로 때를 맞춰 서울대
이태진 교수에 의해 당시 사건의 상세한 전모가 일왕에게 전달되었음을 증명하는 보고서 원본이 발견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명성황후의 시해 장소는 침전이 아닌 건청궁 앞 마당이며 궁 옆 녹산에서 시신을 불태운
것으로 전하고 있다. 당시 경성 주재 일본 영사 우치다 사다쓰지가 쓴 이 보고서는 일왕에게 전달, 결재까지 되었으나 1896년 1월
11일에 열린 히로시마 재판에서 을미사변 45명은 전원 무죄 석방되었다.







110년 전의 일왕의 행태는 현재 고이즈미의 그것과 한치도 틀리지 않은 듯 보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의 국모를 시해하고도 그 잘못을 묵인한 일왕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역사 은폐와
왜곡을 통해 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고 뻔뻔스런 면에서 말이다.

고이즈미는 올해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사를 밝혔으며 최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국으로서 사죄와
책임을 다했다는 망언을 토했다. 관여하지 않고 살 수도 있었던 조상의 치부를 밝히고 대신 사죄를 한 가와노 다쓰미 씨의 용기있는 결단은
일본 총리의 행동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한국을 찾은 양심적인 일본인 가와노 씨는 일본 정부가 본받아야 할 스승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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