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국사찰 '사천왕사지'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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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국사찰 '사천왕사지'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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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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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윤근일)는 '신라 옛 사찰 조사' 사업의 하나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동안 사적 제8호 경주 사천왕사지 발굴조사'를 시작한다. 발굴조사에 앞서 오늘 (4월 25일) 오후 3시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낸다.



이번 발굴조사는 중심사역인 금당지조사와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 되었던 서목탑지에 대한 재조사를 시작으로, 연차적으로 추정 경루지에 대한 성격파악, 회랑의 유무, 중문지, 남문지 존재유무 확인조사 등 사역 전체 범위 파악과 사찰 내 부속 건물지에 대한 확인 및 철로 북편 강당지에 대한 조사, 귀부 주변 및 당간지주의 본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도 더불어 진행될 예정이다. 














▶ 사천왕사지
전경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사천왕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사천왕사'에 대한 성격을 밝히고, 향후 경주역사문화도시 복원·정비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또한 발굴조사현장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 국민들에게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사천왕사(四天王寺)는『三國史記』 卷 第二 文虎王 法敏條에 '당군(唐軍)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명랑법사(明朗法師)가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니 당나라 배들이 갑작스런 풍랑에 침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632년부터 647년까지 재위한 신라 제27대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자신을 도리천(忉利天)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관련된 곳으로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긴 지역이다.
 














▶ 사천왕사지 출토 사천왕상전 






사천왕사는 1918년 8월 原田淑人, 1922년 5월 小泉顯夫·梅原末治·藤田亮策(등전양책), 1929년 藤島亥治郞가 조사하여 각각『大正七年度古蹟調査報告(대정칠년도고적조사보고)』,『大正十一年度古蹟調査報告(대정십일녀도고적조사보고)』,『朝鮮建築史論(조선건축사론)』에 조사내용을 발표했다.

1920년대초 諸鹿央雄에 의해 실시된 서탑지 발굴조사에서는 목탑지의 중앙부에 당초문이 양각된 대형 전돌을 깔았고 천조형(千鳥形) 녹유전은 주변 테두리에 일렬로 깔았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신라시대 뛰어난 조각가 양지(良志)스님이 작품 활동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1922년 조사 때 스님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사천왕상전 아랫부분(국립경주박물관 소장)과 연화문, 보상화문, 쌍조문, 녹유귀면와편, 녹유전편 등의 와전류들이 출토되어 이번 발굴조사에서 스님의 뛰어난 작품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사역 내에는 금당지, 동·서목탑지, 추정 경루지가 있으며, 사역 밖에 머리가 없어진 귀부(龜趺) 2기와 높이 2.4m의 당간지주(幢竿支柱) 1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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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발굴조사 예정지(서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