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사지, 신복(神福)이란 명문이 있는 기와에서 유래
상태바
신복사지, 신복(神福)이란 명문이 있는 기와에서 유래
  • 관리자
  • 승인 2006.02.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복사지(神福寺址)는 문성왕 12년(850)경에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현존하는 유물을
통해 볼 때 이보다는 후대인 고려시대 초반 에 건립된
사찰로 보인다. 이 사찰은 심복 혹은 신복사로 전해져
왔으나 1936년과 1937년에 신복(神福)이란 명문이 있는
기와가 발견 되어 신복사지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신복사지에는 보물 제84호인 석불좌상과 보물 제87호인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 신복사지3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




신복사지3층석탑은 이중기단의 3층석탑이다. 기단부는 지대석(地臺石) 윗면에 연꽃 무늬를 돌렸고, 아래층 기단면석에는 각 면에 3개의 안상(眼象)을 새겼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 복발, 버개, 보주가 남아 있다. 옥개받침은 모두 3단이며 1층 탑신에 감실이 만들어졌고 주변에는 문을 만들어 붙였던 구멍이 6개가 있다. 전체적으로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지대석에 귀꽂방향으로 쏠린 연꽃 무늬를 사용한 점이나 기단부터 옥개석의 각층위마다 별석이 있는 점 등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 신복사지석불좌상(神福寺址石佛坐像)




신복사지석불좌상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 앞까지 올려 무엇인가 잡고 있는 자세로 앉아 있다. 이와같은 보살상은 평창 월정사와 논산의 개태사에도 남아 있으며 최근 원주 법천사에서도 출토되었다. 이는 부처에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예를 올린다는 자세로 희견보살 또는 약왕보살이라 불리운다.



머리에는 원통 모양의 높은 관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팔각형의 천개(天蓋)가 올려져 있다. 천개의 아래면에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는데 보관과 조각한 선이 일치하지 않고 있어서 원래의 부재는 아닌 듯하다.



원통형의 높은 관, 동글동글한 얼굴, 짧은 인중, 미소띤 입과 같은 표현은 인근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 얼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도 같은 모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