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 옛터’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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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옛터’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착수
  • 관리자
  • 승인 2007.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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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조사 착수식







 







문화재청과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18일, 유홍준 문화재청장, 서중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 및 북측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성 만월대에서 고려왕궁터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을 위한 첫 삽을 떴다.



만월대는 1920년대 후반, 왕조가 망하고 폐허가 된 성을 보면서 망국의 한을 달랜다는 내용으로 민중 사이에 크게 유행한 가요인 '황성옛터'의 옛터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개성 만월대는 송나라 사신이었던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 당시의 웅장하고 화려했던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고려의 궁궐은 자연지세를 살린 독특한 건물배치를 이루고 있었고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일본 궁궐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개성 만월대
전경







 







고려는 개성으로 천도하면서 도성을 왕궁과 궁성의 이중구조로 만들었다. 만월대는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하였는데 지형적 특성상 높은 축대를 쌓고 여러 건물들을 세웠다. 대부분의 궁궐들이 평평한 지형에 넓게 자리를 잡아 별도의 축대를 쌓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된 것에 비하여 만월대는 경사지를 이용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태조의〈훈요십조(訓要十條)〉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풍수도참설을 신봉한 고려가 풍수상 지기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한 배려에서 나온 축조방식으로 해석된다. 또한 여러 단의 축대를 만들고 건물을 세울 경우 건물의 지붕들이 층층이 겹쳐져 전체 건물군이 웅장하게 보이도록 하는 의장적 효과도 나타난다.



이러한 역사적 흔적을 찾아 향후 2개월간 추진될 남북 공동발굴은 만월대 유적의 서북지구(약 일만평)를 대상으로 유구의 분포양상의 확인을 위한 탐색조사 중심으로 실시되며, 이를 통해 궁궐의 배치구조나 성격규명, 고려시대 궁궐의 생활유적 발견 등에 큰 학술적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개성역사지구가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신청되어 6~7월 경 ICMOS(국제기념물및유적협의회)의 실사가 있을 예정으로, 이번 발굴의 성과는 개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어 지난 천년동안 보존되었던 역사도시로서의 개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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